방명록

 이글루는 안써서 아는 분도 없지만.
 그래도 방명록은 만드는 나님. 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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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아르네 | 2010/12/31 23:59 | 잡담 | 트랙백 | 덧글(0)

여름, 미르

 

 여름은 덥다. 역시 당연한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헉헉대면서 방금 산 생수를 한 모금 마셨다. 요즘 들어 계속 이 모양이다. 비 한 방울 없이 쨍쨍한 나날. 하늘에 고고하게 떠다니는 구름과 내일이면 비 온다, 주말이면 비 온다 어쩌고 떠들어 대는 일기예보가 얄미워진다.

 다행인건 햇빛이 얼마나 뜨거운지 땀도 나오기가 무섭게 말라버린다는 거. 이런 날씨가 계속되면 비가 올 것처럼 무더운 게 보통인데 이렇게 까지 건조한 더위는 처음인 것 같다. 아침까지만 해도 비가 올 것처럼 꾸물거리더니 누가 습기를 전부 빨아드린 것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양산이라도 하나 쓸걸. 아니면 모자라도. 이러다가 새까맣게 타버릴 거라고 투덜거리면서 팔을 드는데 아니나 다를까 땅바닥에 지렁이가 죽어있는 게 보였다. 으악, 징그러워.

 지렁이의 크기가 어마어마했다. 굵기는 엄지손가락 정도. 보통의 지렁이의 다섯 배는 넘지 않을까. 크기가 이쯤 되자 징그럽다는 생각은 오히려 사라지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렇게 큰 지렁이도 있나.

 덥다는 것도 잊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지렁이가 조금 꿈틀했다. 살아있는 모양이다.

 주변의 작은 지렁이들은 전부 말라서 죽어있는데 -아니, 역시 밟혀 죽어있는 걸까. 납작하다.- 혼자만 살아있다니 이거야 말로 왕 지렁이의 능력인가.

 그렇다고는 해도,


 "비 오는 줄 알고 땅위로 나왔는데 말라죽을 위기라니 지렁이도 큰일이구나."


 어쩐지 우쭐한 기분이 들어 나는 그렇게 흥얼거리며 들고 있던 병의 물을 조금 부어주었다. 흙으로 옮겨주는 게 가장 좋을 테지만 역시 만지고 싶지는 않다. 이러쿵 저러쿵 해도 징그러운 건 징그러운 거다.

 수분이 공급되자 지렁이는 다시 아주 천천히 꿈틀대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선행을 하자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들고 있던 생수병을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몇 분이라도 넣어두면 좀 시원해지지 않을까. 집안은 조금이나마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지만 정원의 식물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시들시들해 보였다.

 사람도 버티기 어려운데 나무라고 별수 있겠어. 어제 지나다 보니 옆집 꼬맹이는 커다란 대야에 물 담아놓고 들어가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부러웠다.

 나무에 물이라도 줄까. 생각해보니 여기 와서 나무에 물을 준적은 한번 도 없다. 이래서야 관리인이라고 할 수 없지. 사실 그보단 마당에 물 좀 뿌렸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건조해서 걸을 때마다 먼지가 올라온다.

 하지만 수도꼭지에서는 창고를 한참이나 뒤진 후에야 찾아낸 호스를 연결했음에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어라? 분명 오늘 아침에 씻었는데? 혹시나 싶어 목욕실에 들어가 물을 틀어봤지만 마찬가지.

 이 더위에 수도관까지 고장난건 아니겠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수리공을 불러야 하나. 그러다 문득 이 집 정원 한쪽에 우물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하긴 작지만 연못도 있으니까 우물 하나 더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덮개로 덮여있는걸 언뜻 본 기억이 나는데 물이 마르진 않았을까. 마당을 지나 정원안쪽에 손대지 않아 무성하게 자란 풀 가려진 우물이 보였다. 더위가 한풀 꺾이면 이 정원도 손봐야겠다.

 풀을 헤치고 덮개를 밀어내자 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밤에 보면 무섭겠는데. 문득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집의 크기답게 우물의 크기도 꽤 커서 어른 하나정도는 아차하면 떨어져버릴 것 같다. 조심해야지.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내밀어 구멍 안을 살펴보니 슬프게도 말라있었다. 혹시나 싶어 가져간 양동이에 줄을 묶어 내려 보내 봤지만 텅하고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수리공을 불러야 겠다.

 더워죽겠는데 괜히 고생했다고 투덜거리면서 줄을 끌어올릴 때였다.


 - 이보게.


 낮으면서 기묘한 울림을 가진 목소리였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주변의 풀과 나무까지도 후두둑 몸을 떨었다.

 혹시나 주변을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당연하다. 뒷마당까지 들어오는 외부인은 별로 없다. 혹시나 싶어 하늘을 살펴봤지만 역시나 구름하나 없는 파란 하늘만 보였다.

 아아. 결국 그건가.

 어쩐지 납득하는 자신이 싫어져 나는 한숨을 내쉰다. 이 마을에 와서 점점 내가 이상해지는 것 같다.


 - 이보게. 좀 도와주게나.


 이상한 말투. 이건 빼도 박도 못 하는 비인간 류다. 또다시 한숨. 이러다가 아는 존재 중 인간보다 비인간이 더 많아지는 건 아니겠지.


 "네에 네에.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 내 목소리가 들리는가? 다행이군.


 비꼬는 말투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안도한 목소리였다.


 - 맑은 물이 필요하네. 이집의 물과 비를 모아봤는데도 부족하군.


 네 탓이었냐! 수도관이 마른 게!


 - 물이 없으면 갈수가 없네. 오늘가지 못하면 또 언제 기회가 될지...


 그거 참 뻔뻔하기도 하다. 투덜거리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우물 안을 들여다봤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블랙홀 같은 구멍이 입을 벌리고 있을 뿐, 그 흔한 빛이나 요상한 생물 같은 건  보이지 않는다.

 이번 건 뭘까. 우물이면 역시 물에 사는 녀석인가...아니, 말랐는데도 살 고 있으니 뭔가 다른 녀석일지도. 어쩌면 어두운 곳에 살아야하는 거 아닐까. 두더지라던가.

 아니, 그보다.


 “물만 주 면 되는 건가요?”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놓으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했다는 사람도 있다잖은가. 급한 불 끄자마자 마음이 변할지 어떻게 알아.

 -그래. 물만 주 면 되네.


 “더 바라는 거 없는 거죠?”


 -그렇다네.


 그렇다면야. 나는 양동이를 내려놓고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아깝지만 냉장고에 넣어둔 생수를 써야겠다. 반도 못 마신 건데.


 “바빠요?”


 갑자기 담 위로 동글동글한 머리하나가 쑥 올라오면서 말을 걸었다. 깜짝이야.


 “뭐 하는 중이긴 한데. 왜?”

 “혹시 여기도 물 안 나와요?”


 설마 아까 그녀석이 이 일대 집의 물은 전부 말려버린 건 아니겠지. 나는 수경을 쓴 동글동글한 머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 수영하려고?”

 “네. 같이 할래요?”

 “아니, 됐어.”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나이나 체면은 둘째 치고 그 대야엔 안 들어갈 것 같아서 말야.


 “근데 지금 뭐해요?”

 “아...맞다.”


 잊고 있었네. 우물 속 녀석한테 생수 갖다 줘야하지. 나는 부엌으로 가려다가 멈칫했다. 혹시 꼬맹이가 알지 않을까?


 “혹시 우물에 사는 게 뭔지 아니? 어딜 가야한다는데 물이 필요하다네.”

 “수수께끼예요?”

 “아니, 뭐...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굳이 맞춰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빼면 말야.


 “음...우물에 사는 거? 할머니! 우물에 사는게 뭔지 알아?”


 꼬맹이의 머리 옆으로 천천히 할머니 머리가 추가됬다. 음, 뭔가 괴기영화의 한장면 같다. 나이에 비해 고운 할머니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실례지만 꽤 귀여웠다.- 입을 열었다.


 "개구리?"


 으엑...

 순싯간에 일그러지는 내 얼굴에 할머니가 호호호 하고 손을 저으며 웃었다. 우물 속에서 사람에게 말을 거는 개구리 같은건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데.


 "어디보자...우물에 사는 게 뭐가 있더라?"

 "물이 필요하다고 하던데요?"


 혹시라도 개구리 다음에는 도마뱀이나 그 비슷한거라도 튀어나올것 같은 기분에 서둘러 대답하자 할머니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물? 물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그러더니 허둥지둥 돌아서서 빨래를 거둬야 겠다는 둥, 말리던 고추를 들여놔야 겠다는 둥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구, 큰일 났네."

 멍청하게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이 할머니는 분주하게 빨래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꼬마가 소리쳐 물었다.


 "할머니, 뭔데?"

 "미르야, 미르!"

 "...미르?"


 ...미르가 뭐야?

 우리가 보거나 말거나 할머니는 덜 마른 빨래를 한아름 들고 집안으로 부지런히 옮겼다. 꼬마는 그러거나 말거나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나도 봐도 되요?"

 "...상관은 없는데, 위험할 지도 몰라."

 "그럼 할머니가 가지 말라고 했을 거예요."


 ...아하.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는 줄 알았더니 꽤 현명하게 처신하고 있던 모양이다. 담 위에서 머리가 쏙하고 사라졌다. 그렇다면 나한테도 위험한 일은 아니라는 거겠지? 나는 한 번 더 분주하게 움직이는 할머니의 모습을 흘끗 보고 물을 가져오기 위해 발을 옮겼다.

 신발을 신고 마당으로 나오자마자 탁탁탁하고 꼬마의 발소리가 들렸다. (이 마을 특성에 따라) 언제나 열려있는 대문이 끼익하고 열리면서 꼬마의 얼굴이 사라질 때처럼 쑥 하고 튀어나왔다.

 "어디예요?"


 뒷마당이라고 말을 하려다가 나는 피식 웃었다. 수영복 차림에 물안경, 거기에 튜브까지 허리에 끼고 있는 폼이 수영장에라도 온 것 같다. 어지간히 물놀이가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물이 안 나와서 어쩌나.

 웃음을 참으며 뒷마당을 가리키기가 무섭게 꼬마의 슬리퍼가 먼지를 날리며 달음박쳤다. 덕분에 무성하게 자란 수풀을 피하기가 한결 쉬웠다. 꼬마의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됬으니까.


 “어디예요? 어디 있어요, 미르?”

 “이거 아닐까?”

 “우물? 미르가 우물이예요?”

 “우물이라기 보다는...”


 나는 손안에 든 생수병을 뚜껑을 열고 우물을 향해 내밀었다.


 “이대로 부어드리면 되요?”


 -그래, 부탁하네.


 꼬마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우물과 그 속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봤다. 그렇게 기대하고 보면 부담스러운데 말이지. 미르가 두꺼비나 도마뱀 같은 거면 실망할거 아냐.

 물을 전부 부은 후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 물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때 쯤 머리위로 뭔가가 톡하고 떨어졌다.


 “비다!”


 아무 전조도 없이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 정말? 그렇게 건조했는데? 하늘을 올려다 본 순간 뭔가가 휙 하고 눈앞을 지나갔다.


 “응?”

 “...어?”


 박자가 빨랐던 건 역시 꼬마였다. 동시에 하늘을 올려 다 봤지만 도저히 눈앞의 것이 믿기지 않았던 나와 달리 꼬마는 입에 비가 들어가는 것도 모르고 큰소리를 질렀다.


 “용이다아!!!! 용! 용! 용이다!! 용이야!! 우-와! 용이야!!”

 “...허.”


 탄식인지 웃음인지 모를 신음이 나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오색으로 빛나는 비늘, 부드럽게 흔들리는 꼬리. 무엇보다 처음으로 느껴지는 위압감. 그 크기조차 가늠되지 않은 용이 고개를 돌려 이쪽을 쳐다보자 나도, 꼬마도 숨조차 멈춰버렸다. 눈동자가 마주쳤다.


 -빚을 졌군.


 감사하다는 뜻인가. 용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는데 목소리만은 똑똑하게 머릿속에 들려왔다.


 -잊지 않겠네.


 잠시 용의 머리가 상하로 움직이는 듯하더니 그 몸이 휙하고 움직였다. 헉하고 숨을 들이 마시는 사이, 용은 벌써 손가락만한 크기로 작아져 있었다.


 “...세상에.”

 “우와~ 용이다~”


 입조차 벌어지지 않는 나에 비해 꼬마는 벌써 정신을 차렸는지 빙글빙글 돌면서 뛰어 다니고 있었다. 아아, 그렇군.

 미르라는 건 용을 말한 거였군. 그러니까 옆집 할머니는 용이 승천하면 비가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말야.


 “젠장.”


 사서 처음 입은 옷이었는데 흠뻑 젖어가고 있었다. 참고로 오늘 꽤 신경써서 손질한 머리도.

by 키아르네 | 2009/10/08 20:48 | 소설┓ | 트랙백 | 덧글(0)

음..
















요즘 포스팅이 영;;;
by 키아르네 | 2009/09/25 01:47 | 잡담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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